우리를 광야로 부르심은
신앙은 깊이 들어갈수록 신비를 더한다.
끝없이 펼쳐진 하나님의 세계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영안의 눈이 열리니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주님을 볼 수가 있었다.
엘리사가 기도하니 게하시의 눈이 열려 천군 천사들을 보게 되었듯이
영적인 눈을 뜬 자만이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사는 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변화 산상의 놀라운 세계를 경험한 자는 결코 그것을 잊을 수가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깊이 깨달은 자는 세상 적이고 육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바울이 그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견디고 소망 가운데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 적인 것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과 씨름을 하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고 계신다.
깨닫지 못하면 더 강도 높은 시련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인을 주시기도 하신다.
우리는 날마다 내 곁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지금도 인생의 광야로 우리를 불러 다시금 사명의 자리에 서게 하신다.
그런대 왜 하필이면 험난한 광야일까?
예수님도 유다 광야에서 시험을 마치는 날 비로소 공생애가 시작되었듯이
우리를 인생의 광야로 몰아내심은 우리를 부르시고 훈련하신 후에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자 광야와 같은 고난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해주실 것이다.
영적인 눈을 뜬 자만이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믿음의 글 중에서-